낯선 시대를 살아낸 낯설지 않은 한 사람
이외수. 그 이름만으로도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흔들립니다.
그는 단지 문장을 썼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삶과 글 사이에 모호한 경계를 만들며, 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천천히, 그러나 깊게 탐구했던 작가였습니다.
1946년 강원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 발발 이후 남하하여 강원도 인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랐던 그는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도와 틀에 얽매이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자퇴한 뒤 본격적으로 창작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느껴지는 ‘틀에서 벗어난 감성’은 아마도 이 시절부터 차곡차곡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진 채, 삶의 변두리에 머물며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민낯을 직시하던 그의 태도는 이후의 작품들 속에서 꾸준히 이어집니다.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감성의 언어
이외수 작가의 글은 참 이상합니다. 정제된 문장도 아니고, 감정을 절제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진심처럼 다가옵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만큼 거침없고, 때로는 아이처럼 순수한 시선을 던집니다. 그의 글은 독특한 어휘와 리듬을 가지고 있어 처음 접한 사람은 ‘조금 낯설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뱉어내는 감정은 놀랄 만큼 보편적입니다. 슬픔, 고독, 질투, 후회, 외로움 같은 것들. 우리는 쉽게 말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감정들입니다.
그는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꺼내 보였고, 때로는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독자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 위로는 누군가 토닥이는 손길 같은 것이 아니라,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는 묵직한 공감입니다.
대표작, 그리고 문장의 숨결
그의 대표작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단연 『하악하악』입니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감정의 밀도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트위터나 블로그에 올라올 법한 짤막한 단상 같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고뇌와 통찰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은 일종의 ‘마음 일기장’처럼 읽힙니다. 가볍게 웃을 수 있지만, 웃고 나서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문장들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청춘불패』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책입니니다. 이 책은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에 숨어 있는 좌절, 무기력, 방황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닌 ‘함께 주저앉아주는’ 위로를 건넵니다. 그는 청춘을 이상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청춘은 때로 엉망일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놓지 않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합니다. 그 외에도 『절대강자』, 『칼』, 『들개』 등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본성, 권력, 폭력, 생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외수의 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숨 쉬는 문장들 – 이외수의 대표작 깊이 읽기
이외수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정을 수놓는 자수장이자,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꾼이었습니다. 그의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속을 울리기 위해 쓰였고, 그 여운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가장 널리 사랑받고 이야기되는 작품들을 통해, 이외수 문학의 언어와 위트,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여다봅니다.
첫번째 작품 하악하악은 “상처를 남기면서 치유하는 문장” 아마도 이외수 작가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하악하악』은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종종 오해받곤 합니다. 겉보기엔 짧고 단편적인 생각들로 이루어진 문장 모음집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진동을 그대로 담아낸 무게감이 있습니다. 책의 각 페이지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적이면서도 솔직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도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 고통, 실패, 상실, 어리석음, 생존 ― 그것들은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처럼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그렇습니다.
“세상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때도, 바람은 너를 조용히 스쳐 간다.”
『하악하악』은 그런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위로가 되는 말들, 독자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감싸는 표현들이 책 전체를 이끌어 갑니다.
두번째 작품 청춘불패“청춘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위장된 진혼곡” 『청춘불패』는 청춘을 찬란한 시기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외수는 그 환상을 조용히 해체하며,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그 시간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외롭고 때론 비참한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실패, 외로움, 번아웃, 남겨짐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젊음이 항상 아름답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비난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청춘을 껴안아 줍니다.
그는 청춘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기어가고 있어도, 그건 앞으로 가는 거야. 세상은 너의 자세를 기억하지 않아. 너의 끈질김만 기억하지.”
이 책은 자조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곁에 앉아 조용히 울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이십대, 삼십대의 혼란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청춘불패』는 따뜻한 동행이 되어 줍니다.
세번쨰작품 절대강자 “풍자와 사회비판이 인간극으로 녹아드는 곳” 『절대강자』는 이외수 문학 중 가장 풍자적이며 철학적인 깊이를 담은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현실의 권력, 탐욕, 인간 본성의 약함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부서져 있고 기이하며 때로는 과장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 혹은 사회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작가는 그들을 통해 묻습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 육체적 힘인가? 사회적 지위인가? 아니면, 거친 세상 속에서도 착함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인가? 이 책은 『하악하악』처럼 조용하지는 않지만, 그 울림은 묵직하고 사려 깊습니다. 웃음 속에 분노와 연민이 숨어 있는 풍자의 방식으로, 사회를 향한 저항을 보여줍니다.
네번째 칼 “환상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이야기” 『칼』은 제목 그대로, 날카롭고 압도적인 상징성을 품은 작품입니다. 이야기도 문장도 마치 날선 칼날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졌습니다.이 작품은 정의, 고통, 배신, 그리고 파괴와 보호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대해 다룹니다. 주인공은 물리적 여행과 내면적 여정을 동시에 경험하며, 인간의 폭력성과 치유의 가능성을 고뇌합니다. 작가는 ‘칼’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무기가 아닌, 인간의 선택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아름다움을 조각할 수도, 상처를 낼 수도 있는 그것. 이 작품은 명확한 결론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합니다.
다섯번째 들개 “부서진 자들을 위한, 부서진 자의 이야기” 『들개』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밀려난 한 인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기서 ‘들개’는 가족에게서도, 사랑에서도, 세상에서도 밀려난 존재를 의미합니다. 길 위를 떠도는 들개처럼, 주인공도 목적 없이 부유하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거칠고 쓸쓸하며 때로는 황량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희망이 있습니다. 들개는 결국 우리 모두가 외로울 때,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의 자화상입니다.
이 작품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생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외수는 해피엔딩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진실을 줍니다. 그것이 때로는 더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외수의 작품들은 복잡한 플롯이나 충격적인 반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문장의 질감, 감정의 리듬, 고통과 기쁨의 진정성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의 문장은 위로하고, 동시에 흔들어 깨웁니다. 강하든, 부서졌든, 그의 말은 언제나 독자 곁에 머뭅니다. 이외수를 읽는다는 것은 책을 끝내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우리가 필요로 했던 ‘거울’ 하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삶으로 쓴 글, 글로 남긴 삶
이외수 작가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만 글을 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강원도 화천에 작은 집을 짓고, 거기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 생존자다”라고 말하던 그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그 누구보다 인간다운 방식으로 삶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2022년 4월 25일, 긴 병상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책장 속 한 문장을 꺼내 읽으면, 마치 그가 곁에서 조용히 말 건네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이 이외수의 글이 가진 힘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단 한 사람
이외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그를 ‘괴짜 작가’라 부르기도 했고, ‘마음의 시인’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의 글은 결국 사람에게 닿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보고, 사람을 썼고, 사람을 사랑한 작가.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다정했던 그 글들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를 다시 꺼내 읽고 싶을 때는 정해진 날이 없습니다.
단지 마음이 어딘가 허전할 때, 가끔 세상이 너무 거칠게 느껴질 때, 그때 그의 문장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손을 잡아줍니다.